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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시승기

말리부, 백살 쉐보레가 낳은 옥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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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종훈 작성일11-10-23 12:00 조회8,53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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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살이 된 쉐보레가 한국에서 옥동자를 낳았다. 말리부다. 말리부는 미국 LA 인근의 고급 휴양도시의 이름이기도 하다. 휴양지를 선망하는 중산층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말리부는 1964년 처음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해 지금까지 47년간 850만대 이상을 판매한 미국 중형세단의 상징적 존재다. 100년 쉐보레 역사의 거의 절반을 함께 해온 차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미국인들과 함께해온 쉐보레 말리부는 이미 미국 문화의 일부를 이루는 존재다. 300여곡의 팝송이 쉐보레를 언급하고 있고 그중 60여편에선 말리부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미국인들의 삶 속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해온 차임을 말해주는 사실이다. 그런 말리부가 미국 아닌 한국에서 처음 생산 판매에 나선다. 의미심장하다.


한국지엠의  쉐보레 말리부는 이미 단종된 지엠대우 토스카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중형 세단시장의 기대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쏘나타, K5, SM5 등 쟁쟁한 모델들이 포진해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이다. 먹고 먹히는 정글에 또 하나의 존재, 8세대 말리부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잘 다듬어진 보디라인과 개성을 갖춘 디자인은 또 다른 중형세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정하다. K5가 날카롭고 세련된 K5, 어지러울 만큼 화려한 라인을 뽐내는 쏘나타 등에 비하면 말리부의 단정함은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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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포트 그릴과 그 가운데 자리한 엠블럼, 꼬리를 치켜올린 헤드램프가 프런트 마스크를 이루고 있다. 보닛은 볼륨감 있게 위로 살짝 솟았다. 헤드램프에는 오토 레벨링 기능이 있다. 차의 경사에 맞춰 헤드램프의 조사각도를 자동으로 조정해준다.
사이드 뷰 역시 단정하다.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이 세단의 정형을 보여준다. 라인의 흐름도 작위적이지 않다. 자연스럽다. 두터운 C 필러는 든든한 신뢰감을 주는 요소.


말리부의 디자인은 뒤에서 빛을 낸다. 듀얼 테일램프는 바로 쉐보레의 스포츠카 카마로에서 가져왔다. 두 개의 사각형을 배치한 이 모습은 다시 계기판에서도 만나게 된다. 쉐보레의 DNA를 새겨 넣음으로써 자신의 혈통을 드러내고 있는 것.
뒤에서 이 차를 보면 범퍼에서 트렁크 끝선까지가 두껍게 보인다. 상대적으로 뒤창이 좁게 보인다. 이런 비례가 차의 이미지를 단단하게 해준다. 창이 좁다고 시야가 좁혀지는 건 아니다. 룸미러를 통해서 충분한 시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트렁크 끝 선은 스포일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고속주행 안정감을 높일 수 있게 했다.


말리부의 디자인, 특히 익스테리어는 기존 중형차들이 놓치고 있는 보수적인 디자인으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진보적인 디자인이 조금 더 낮은 연령대를 좇고 있다면 말리부는 보수적인 디자인으로 중형세단 소비자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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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는 중형차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움을 갖췄다. 12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는 넓은 시트는 허벅지까지 충분하게 받쳐준다. 허리와 어깨도 편하게 지지한다. 지엠이 자랑하는 R&D용 마네킹인 ‘오스카’를 동원해 개발했다는 시트다.


듀얼 테일램프의 형상은 계기판에도 그래도 적용됐다. 두 개의 사각형으로 분리된 계기판은 주행 중 차이 상태를 알 수 있는 정보들이 보기 쉽게 펼쳐진다. 센터페시아에는 숨겨진 공간, 시크릿 큐브가 있다. 내비게이션 모니터 안쪽에 숨겨진 공간을 만들어 수납공간으로 활용하는 것. 올란도에 처음 적용한 것을 말리부에까지 집어넣은 것이다. 기능, 효율도 좋지만 더 와 닿는 건 아이디어다.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건 생명력이 있다는 말이다. 자동차 메이커라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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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 모니터 주변에 마련된 버튼들은 아이팟을 다루듯 손가락으로 가볍게 터치하면 작동한다.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던 버튼을 가볍게 터치하는 기분이 색다르다.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한 부분이다. 자동변속 레버 위에는 수동변속을 할 수 있는 버튼이 자리했다. 센터 콘솔 위로 팔을 걸치고 편하게 변속을 할 수 있다.


말리부에는 2.0과 2.4 가솔린 엔진이 올라간다. 시승차는 2.0 에코텍 엔진을 얹은 모델중 최고급 트림인 LTZ이다. 창원 중앙역에서 차를 넘겨받아 부산 해운대까지 달렸다. 공차중량 1,530kg인 차체를 141마력 2.0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 조합으로 구성된 파워트레인이 끌고 간다.


가볍게 팡팡 터지는 힘에 익숙한 이들은 이 차를 타고 당황스러울지 모른다. 생각만큼 차가 안 나간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엔진 소리는 커지는데 차의 반응은 엔진 소리를 따라가지 못했다. 소리가 앞서가고 차는 그 뒤를 쫓아가는 반응이다.


한국지엠의 R&D 부문을 이끌고 있는 손동연 부사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가속페달의 입력 각도를 받아들여 드로틀 밸브의 열림 각도를 정하는데 경쟁차에 비해 열림 각도를 작게 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가속시의 충격을 줄이고 보다 편안한 승차감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출력, 성능 보다는 차의 안락한 승차감에 더 큰 비중을 뒀다고 풀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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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 다루면 말리부는 훨씬 더 완성도 높은 반응을 보인다. 무조건 밟아대며 거칠게 운전할 때에는 거부하듯 주춤대지만 여유를 가지고 부드럽게 다루면 잘 따라준다. 여자를 다루듯 운전해야 하는 차다.  


조향성능, 즉 스티어링 반응은 놀라운 수준이다. 2.6 회전으로 완전히 감기는 핸들은 놀라운 수준으로 코너를 공략한다. 차체의 반응이 빠르고 민감하다. 그리고 정확했다. 고속도로 램프를 진출입할 때, 국도의 커브를 돌아나갈 때 차와 드라이버는 한 몸인 듯 움직였다.
조향장치와 궁합을 맞추는 서스펜션도 수준급이다. 서스펜션 형식은 앞이 맥퍼슨 스트러트, 뒤가 4링크다. 코너에서 차체를 지지하는 느낌이 단단하다. 조금 과하다 싶은 시도도 여유 있게 받쳐준다. 자꾸 코너가 기다려지는 차다.


노면 충격도 잘 걸렀다.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 쇼크를 잘 걸러 차체와 몸이 받는 스트레스를 크게 줄였다. 방지턱을 지난 후 잔진동도 없다. 조금 거칠게 턱을 넘어도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입 프리미엄 세단과 견줘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서스펜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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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100km 전후로 순항할 때의 승차감은 만족스럽다. 우수한 서스펜션이 차체의 흔들림과 노면 충격을 적절히 제어하고 있어서 시트에 몸을 맡기면 차체의 적당한 무게감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중형세단이라면 포기하지 말아야할 부분을 잘 완성했다.


변속레버를 M에 옮겨 수동변속을 시도했다. 엄지손가락으로 변속을 하는 맛이 색다르다. rpm이 치솟지만 절대 스스로 변속하는 법은 없다. 높은 rpm에서 차가 야생마처럼 거칠어져도 운전자가 변속을 하지 않으면 변속기는 그냥 기어를 물고 있다. 우직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변속 특성을 좋아한다. 수동변속 모드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차들은 고 rpm에 이르면 운전자의 조작 없이도 스스로 변속을 해버린다. 좀 더 강하게 운전하고 싶은 드라이버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 스스로 똑똑한 체 스르르 변속해버리며 엔진 힘을 빼버린다. 자동변속이라면 당연한 일이겠으나 수동변속에선 헛 똑똑이보다는 명령에 복종하는 우직함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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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는 부드럽지만 확실했다. 제동 쇼크가 크지 않다. 게다가 말리부에는 BAS(Brake Assist System)가 있다. 비상시 급제동을 할 때 브레이크를 살짝만 밟아도 더 큰 제동력을 발생시켜 빠르게 차를 멈추게 한다. 브레이크를 밟는 힘이 약한 노약자나 여성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차선이탈 경고 시스템은 느슨해진 운전자의 주의를 되잡아준다. 방향지시등을 작동하지 않고 차선을 바꿀 때 경고음을 내는 것. 운전자가 졸고 있다고 판단해 ‘정신 차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매우 유용한 장치다.


연비는 12.4km/L, 판매가격은 2,185만원부터 2,821만원까지다.


말리부는 국산 중형세단의 또 다른 모습을 만들고 있다. 중형차답게 보수적인 디자인을 회복해 준중형과 확실한 차별을 꾀하면서 기존 준대형차의 소비자까지 유혹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완성도 높은 서스펜션과 조향성능을 갖췄고 실제 일상 운전 속에서 훨씬 더 유용한 승차감에 무게를 둔 차다. 라인업이 빽빽해지면서 하향화된 국산 중형차의 위치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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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단도직입
지붕과 윈드실드가 만나는 틈새가 떠 있다. 야무진 인테리어 마감이 이 부분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고 평소에는 손길도 닿지 않는 부분이지만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챙겨야할 부분이다.
엔진소리도 거친 편이다. 차분하고 안정감 있는 승차감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엔진 소리를 조금 더 다듬어 듣기 편하게 만드는 게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