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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시승기

현실적인 로망, 혼다 C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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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종훈 작성일11-10-14 02:05 조회11,75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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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혼다는 한국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반전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수입차의 아킬레스건인 환율은 치솟았고 일본을 덮친 대지진은 일본의 자동차 산업을 강타했다. 대지진의 충격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고는 하지만 환율은 여전히 고공행진중이다. 혼다로서는 손발이 꽁꽁 묶인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악의 환경인 셈이다.
하지만 손 놓고 앉아있을 수는 없는 법. 위기의 혼다가 새 카드를 꺼냈다. CR-Z이다. 한국의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한 2인승 스포츠 하이브리드카의 형태를 가진 차다. 혼다 CR-Z을 타고 춘천고속도로와 주변 국도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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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 低 廣. CR-Z의 디자인은 이 세 글자로 표현된다. 짧고 낮고 넓다. 길이는 4,080mm. 현대차이 엑센트보다 짧고 쉐보레 아베오보다 40mm 길다. 너비와 높이는 1,740과 1,395mm다. 작은 소형차를 진흙으로 만들어 위를 톡톡 눌러놓은 듯한 비례다. 낮고 넓은 비례는 스포츠카의 미덕이다. 안정감 있는 비례다.
휠베이스와 트레드는 조금 더 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휠베이스는 2,435mm로 길이에 비해 짧고 트레드가 1,515(앞), 1500(뒤)mm로 평균적인 수준이다.
스타일로 보면 3 도어 쿠페다. 날렵한 옆모습을 보며 총알이 생각났다. 짧은 길이에 야무진 라인들이 살아있다. 앞모습은 공격적이다. 범퍼 한 가운데 자리한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 위로 혼다 엠블럼이 자리했다. 혼다 엠블럼의 위치는 경영진의 의견을 무시하고 개발자들이 지켜냈다는 후문이다. 사장이 엠블럼 위치는 라디에이터 그릴 가운데가 어떠냐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개발진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엠블럼 위치의 좋고 나쁨을 떠나 그만큼 개발진이 존중받는 회사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일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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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은 앞모습 못지않게 강한 포스를 가졌다. 뒷모습은 45도 각도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지붕을 정점으로 아래로 갈수록 넓게 퍼지는 A자형의 넓고 낮은 자태가 아름답게 보인다. 이 차를 뒤쫓아 가는 이들은 눈이 심심하지 않아서 좋겠다.
실내로 들어가면 계기판을 보는 즐거움이 기다린다. 순간연비와 연료잔량, 배터리의 상태, 하이브리드의 작동상태 등의 정보가 좌우로 배치됐고 가운데 자리한 하나의 원에 rpm과 속도가 함께 표시된다. 차의 속도와 연비에 따라 계기판 바탕색이 달라진다. 운전의 지루함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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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판 모듈 좌측으로는 운전모드를 택할 수 있는 3개의 버튼이 자리했다. 스포츠, 노멀, 이콘 모드다. 힘 있게 달릴 것인지, 기름 아끼며 알뜰하게 움직일 것인지를 정할 수 있는 버튼이다. 스포츠카로 탈 것인지, 하이브리드카로 탈 것인지를 정할 수 있는 것. 같은 차로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기능으로 CR-Z의 자랑이기도 하다. 센터페시아에서 눈에 띄는 건 내비게이션 밖에 없다. 우리 눈에 익숙한 센터 페시아가 아니다. 모니터 위로 작은 수납함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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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승. 일본에선 4인승이지만 한국과 미국에선 뒷좌석을 인정받지 못한다. 무릎공간이 법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뒷좌석 공간은 그냥 수납공간으로 사용해야 한다.
앞좌석 공간은 넉넉하다. 좌우는 물론 머리 위 공간도 여유 있다. 뒷 시트를 접으면 트렁크 공간이 그만큼 더 넓어진다. 4인승이면 엄청 좁지만 2인승이니 좁은 차가 아니다.
핸들은 작다. 핸들을 잡으면 어깨를 오므리는 느낌이다. 왼쪽으로 완전히 감으면 2.5회전해서 오른쪽으로 감긴다. 타이트한 핸들. 조금 돌려도 차가 크게 반응하는 것. 스포츠카로서 마땅한 선택이다.
시동을 걸고 속도를 높여 나갔다. 도로 위를 미끄러지는 자태가 아름답다. 도로에 달라붙어 달리는 자태가 영락없는 스포츠카다. 서스펜션은 조금 거칠다. 무심코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면 쇼크가 생각보다 크게 전해진다. 특히 쇼크의 마지막이 마무리가 허전하다.
조향성능은 맛깔스럽다. 왼쪽, 오른쪽으로 턴 할 때마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운전자의 의도에 오차 없이 반응하는 게 대견하다. 무늬만 스포츠카가 아니다. 제대로 된 스포츠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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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트레인은 1.5L 엔진에 10kW 모터, 무단변속기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스포츠카라고 하기엔 약하게 보일 수 있는 구성이다. 엔진출력 114마력에 10Kw의 모터 출력으로 감히 스포츠카 운운하다니. 제원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은 그러나 스포츠 모드로 변환해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배기가스와 더불어 날아가 버린다.
배기음이 살아나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느낌이 다르다. 잔뜩 달아오른 차체는 살짝 터치만 해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프리미엄급 스포츠세단의 엔진소리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훨씬 힘 있게 달린다. 시속 200km를 어렵지않게 주파했다.
조용하지는 않다. 속도를 조금 높이면 바람소리가 파고든다. 제 속도 만큼의 바람소리다. 편안하게 달리는 승차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자잘한 진동과 윈드실드에 부딪히는 바람소리와 함께 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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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차중량이 1,215kg에 불과할 정도로 가볍다. 가볍다는 건, 스포츠카의 미덕일 뿐 아니라 연비를 중시하는 하이브리드카로서도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가벼워야 빠르게 달릴 수 있고, 가벼워야 기름도 덜 들기 때문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이 차의 연비는 20.6km/L. 스포츠카로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1등급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 ‘이콘’ 모드를 이용하면 차는 얌전해진다. 아이들스톱 기능도 활성화된다. 차가 멈추면 시동도 꺼지는 것. 시동이 꺼지면 에어컨도 함께 작동을 중지한다.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한여름엔 불만이 클수도 있겠다.
혼다의 하이브리드기술이 만든 ‘IMA(Integrated Motor Assist)" 시스템은 가솔린 자동차에 모터와 배터리만을 추가하는 심플한 방식이다. 작은 모터를 이용해 무게를 줄였고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대신 모터가 작으면 EV 모드로 움직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단점도 있다. 모터는 엔진을 보조하는 개념으로 이용하는 것이 혼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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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Z는 한국에서 판매하는 혼다의 라인업중 가장 흥미 있고 혼다다운 모델이다. 기술의 혼다를 좀 더 극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다. CR-Z는 스포츠카와 하이브리드카라는 서로 상이한 요소를 한데 섞은 차다. 서로의 장점을 섞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자칫 이도저도 아닌 차가 되기 쉬운데 CR-Z는 두 요소를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CR-Z는 매우 현실적인 스포츠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해 연비를 포기하지 않았고, 스포츠카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드림카까지는 아니어도 스포츠카를 타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20-30대의 젊은 층만이 아니라 50대 이상의 높은 연령층이 몰고 나타나도 참 멋있겠다. 현실에 발을 딛고 꿈을 꾸는 이들에게 잘 어울릴 차다. 


한국에서 겪는 혼다의 어려움을 CR-V가 해소하지는 못할 것이다. 2인승 스포츠 하이브리드 라는 형식이 한국 소비자들을 설득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전의 카드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소하지만 내실 있는 모델인만큼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기본형은 3,380만원, 내비게이션 장착형은 3,490만원에 판매된다. 기본형은 내년 1월부터 판매한다. 환율의 압박을 심하게 느끼게 하는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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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단도직입
룸미러에 걸리는 선이 거슬린다. 루프에서 시작돼 트렁크까지 이어지는 유리를 상하로 가르는 선이 룸미러에 비치는 후방시야까지 상하로 가르는 것. 눈이 편치 않다. 인스트루먼트 패널 어퍼포켓이라 부르는 센터페시아 상단 수납함은 커버가 고정되지 않는다. 수납함을 열면 커버가 열린 채로 있지를 못하고 스르르 내려가 버린다. 고쳐야할 부분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