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DA CR-V
페이지 정보작성자 바다 작성일04-11-23 23:32 조회7,320회 댓글29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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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혼다가 만든 컴퍼터블 런어바웃 비클
혼다 CR-V가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바야흐로 일본차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중입니다. 일본차들이 한국에 상륙했다고 그리 기분 나빠할 일은 아닌듯합니다. 이미 한국차들도 일본에서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내 마당을 닫아걸 필요는 없는 일이겠지요. 한국차 일본차 가르는 일도 갈수록 의미없는 일인 것 같아요. 꿩 잡는 게 매이고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쥐를 잡는 게 중요하지요. 소비자에게 좋은 차라면 그게 어느 나라에서 만든 차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기술의 혼다가 만들었다는 CR-V를 시승한 건 지난 10월 이었습니다.
CR-V는 컴퍼터블 런어바웃 비클. - 편안하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차라는 말인데요. 차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려주는 이름이라고 봅니다.
이 차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차입니다. 95년에 시판 한 뒤 세계 시장에서 180만대 판매를 넘긴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을 가졌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차가 뒤늦게 한국에 들어온 것이지요.
두 가지 매력이 있습니다. 혼다라는 것과 소형 SUV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혼다는 자동산업구조조정기에도 끄덕없이 버텨낸 메이커입니다. 세계10대, 혹은 5대 메이커만이 살아남는다고 할 때에도 혼다는 예외로 꼽혔을 만큼 인정받는 메이커입니다. 혼다의 기술력을 평가한 것이지요.
소형 SUV는 또 무슨 매력이 있는 것일까요. 스포티지나 투싼의 매력일수도 있는 부분인데요. 바로 SUV를 꿈꿔왔던 소비자들에게 훨씬 빨리 그 꿈을 이루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과거의 SUV는 싼 값에 탈 수 있는 차는 아니었습니다. 비싼 차라는 인식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 SUV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소형 SUV는 SUV의 문턱을 확 낮춘 차랍니다.
같은 장르에 속하는 차들로 토요타 RAV4, 미쓰비시 파제로 미니, 포드 이스케이프, 랜드로버 프리랜더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배기량을 보면 꼭 소형이라고 부르기는 ?n하지만 그래도 작은 SUV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을 듯 합니다.
CR-V는 깔끔한 모습입니다. 세련되게 보이기도 하구요. 터프한 SUV라기 보다는 얌전한 도련님 같은 인상이 더 큽니다. 남성보다는 여성적 이미지지요. 도시형 SUV를 지향하는 차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스페어 타이어를 뒷문에 매단 건 어떻게들 생각하시나요. 개인의 취향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요. 소음이 발생할 위험이 큰 구조인 건 분명합니다. 차가 낡으면 가장 먼저 증상을 보일 부분이지요.
차창이 큼지큼직하게 만들어져 안에서나 밖에서나 시원하게 보이는 건 마음에 듭니다.
실내에 들어서면 혼다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레이아웃이 눈에 들어 옵니다. 사이드 브레이크 레버가 마치 헬기의 조종간처럼 센터페시아 왼편으로 자리잡은 것. 예사스럽지 않은 배치입니다. 빠징코 레버를 잡아 당기듯 힘차게 당기면 됩니다.
일전에 어코드 시승하러 제주도에 갔을 때 만났던 혼다의 엔지니어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우린 사장이 만들라고 하는 것을 만들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만든다. " 그말을 들을 때에는 언듯 이해가 안됐습니다. "완전히 콩가루 회사군"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회사의 기강이 있는 데 사장의 지시가 먹혀들지 않는 회사라면 곤란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었습니다. 본뜻은 아마도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CR-V의 인테리어를 보면서 생각해보니 그 때 그 엔지니어가 한 말의 의미는 "소비자들을 생각하고, 현장의 분위기를 가장 우선시하는 회사 분위기"를 말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기발한 아이디어나 생각, 구상은 현장에서 수시로 나옵니다만 그것이 실제로 구현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적어도 의사결정권자들의 열린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참신한 구상은 구상으로 그치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현장의 분위기나 의견을 위에서 무시하고 경영진의 생각만 강요하게 되면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국산 SUV중 한 모델에서 그런 경우를 보게 됩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지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는 컵 홀더와 간단한 수납대가 있습니다. 레버를 젖히면 이 수납대는 접혀지면서 좌석과의 통로가 됩니다. 이른바 워크스루가 가능해집니다. 실내에서 걸어서 뒷좌석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SUV나 미니밴 등 기능이 강조되는 차종에서는 큰 매력입니다.
뒷좌석 바닥은 평평합니다. 4WD나 뒷바퀴 굴림 차들은 뒤차축으로 가는 드라이브 샤프트 때문에 차 실내에 센터터널이 높게 형성됩니다. 이때문에 뒷좌석 가운데 앉는 이는 다리를 벌려서 센터터널을 다리 사이에 두고 앉아야 합니다. 보기도 흉하고 불편하지요.
하지만 이 차는 섀시를 낮게 배치해 드라이브 샤프트가 실내를 간섭하지 않게 만들어 뒷좌석 바닥이 평평합니다.
CR-V를 몰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스티어링 휠이 좀 무겁더군요. 당황스럽긴 했지만 적응하고 나면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시트는 그리 넓지 않았습니다. 간이의자에 앉은 느낌인데 나쁘지 않았던 게 시트가 몸을 제대로 받쳐줬기 때문입니다. 시트가 몸을 제대로 지지한다는 말이지요. 엉덩이, 옆구리 등이 시트와 잘 밀착됐습니다. 시트와 몸의 일체감은 운전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차를 조금 거칠게 다뤄도 몸이 시트에 밀착돼 있으면 불안감이 덜합니다. 특히 오프로드에서는 아주 중요한 요소중 하나지요.
서스펜션은 물렁거리는 편입니다. 핸들을 좌우로 살짝살짝 틀어보면 차가 휘청거리는 게 느껴집니다. CR-V의 C는 컴퍼터블, 즉 편안한 승차감을 뜻합니다 . 서스펜션이 소프트한 이유를 짐작케합니다. 하체는 꽉 조여졌다기보다 조금 헐거운 느낌이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헐거운 느낌.
가속페달을 꾹 밟으면 얌전했던 숙녀가 치마를 걷어부치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킥다운으로 가속하는 데 엔진이 조용할 리가 없지요. 요동치는 엔진을 달래가며 속도를 높였습니다. 가속력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무리없었습니다. 바람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더군요.
바람소리는 장난이 아닙니다. 시속 120km정도면 그리 높은 속도도 아닌데 체감속도는 훨씬 높습니다. 차체가 높고 서스펜션이 소프트한 탓인듯 합니다.
이 차의 엔진은 i-VTEC DOHC입니다. 밸브 타이밍과 밸프 리프트를 엔진회전 상태에 맞춰 바꿔주는 VTEC 엔진에 흡입밸브의 위상을 엔진부하에 따라 조절해주는 기능을 더했다네요. 엔진에 적용된 앞선 기술을 운전자가 체감하기엔 무리인듯합니다. 하지만 제원표를 보면 출력과 연비, 배기가스 등이 두루 우수함을 알게 됩니다. 앞선 기술이 성능을 높였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변속기는 5단 자동입니다. 주행상황과 엔진파워를 적절히 조화시키며 차를 움직이게 해줍니다. 변속레버엔 D3 버튼이 있더군요. 일종의 파워 모드입니다. 버튼을 누르면 엔진은 rpm을 올리며 즉각 반응합니다. 시차가 전혀 없더군요. 순간적으로 큰힘을 필요로할 때 유용합니다. 가속하거나 추월할 때 말이지요.
계기판에는 연비가 계속 표시됩니다. 운전을 하는 동안 계속 체크하게 되더군요. 결국 가속페달을 마음껏 밟으려고 하다가 연비표시를 보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이를 무시하고 킥다운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잠깐동안 오프로드에 올라섰습니다, 살짝 젖은 오프로드였지요. 이 차에는 ABS에 EBD(제동력 분배시스템), VSA(비클 스태빌러티 어시스트) 시스템이 있어서 거의 완벽하게 차의 자세를 제어해줍니다. 각종 첨단 장치들이 운전 미숙을 커버해 준다고 보면 됩니다. 미끄러운 길에서 급브레이크를 잡아보면 페달을 통해 전해지는 ABS의 기분좋은 작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CR-V의 4륜구동장치는 풀타임 방식입니다. 정상적인 주행 상태에서는 앞바퀴에 대부분의 구동력을 전달해 연비를 향상시킨다는 군요. 평소에는 앞바퀴굴림이나 다름없이 움직인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주행상태에 따라 4륜구동이 필요한 경우, 이를 테면 미끄러운 길에 접어들거나 오프로드를 만나면 네 바퀴에 고르게 동력을 전합니다.
이 차에는 로우 레인지가 없네요. 본격적인 오프로드 주행용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겁니다. 도시형 SUV를 지향하는 차로 오프로드 주행도 못할 건 없지만 제대로 험로를 만나거나 로우레인지가 필요한 황에선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겠지요.
앞서 말했듯이 소형 SUV는 경제적 메리트가 큽니다. 단적으로 말해 "싼 값에 탈 수 있는 SUV"라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CR-V의 가격은 2990만원서부터입니다. 두바퀴굴림이지요. 네바퀴굴림 은 3,390만원입니다.
혼다의 SUV를 이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매력입니다. 하지만 차의 완성도가 그리 높아보이지는 않습니다. 국산 소형 SUV와 비교했을 때 결정적인 우위를 찾기도 쉽지가 않을 듯합니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은 이럴 것 같습니다. 혼다라는 브랜드를 보고 그 가치를 인정한다면 CR-V를 쉽게 선택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도대체 이 차가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는가. 혹은 소형 SUV 가격으론 좀 비싸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면 망설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CR-V와 스포티지나 투싼을 같이 놓고 비교하는 소비자는 없을 듯 합니다. 가격차이가 워낙 클 뿐더러 수입차와 국산차라는 큰 벽이 가로 놓였기 때문이지요.
- 오종훈 <오토타임즈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