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척만하다가 전 이글읽으면 겸손해지더라구여..펀
페이지 정보작성자 김종산 작성일03-05-03 12:54 조회618회 댓글0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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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날 토요일 오후,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버거워 보이는 연장통을 매고 남루한 옷차림에
조글조글한 얼굴을 한 백발의 노인 한 분이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누빈다.
"카알~ 갈아요!" "카알~ 갈아요!"
반가운 소리다. 어릴 때 살던 동네 좁은 골목마다 가끔씩 울리던 그 소리다.
목소리도 적당히 걸쭉하니 노인의 행색으로 보아도 제법 연륜이 엿보인다.
사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좀처럼 칼을 남에게 맡겨 가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들께서 모두 시골 분이셨고, 특히 아버님께서 칼 가는 솜씨가 대단하셨다.
덕분에 나도 꼬마 때부터 어깨 너머로 배운 덕에 칼 가는 일이라면 제법 자신이 있다.
내가 어릴 때, 일 년에 두 어 달은 시골에서 자란 덕에 낫질을 꽤 하였고,
아마 국민학교 고학년 때 쯤으로 기억하는데,
왼손잡이인 나를 위한 내 전용의 왼낫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낫 가는 일부터 제대로 배웠던 것 같다.
꼴 베러 나가기 전에는 항상 낫을 가는데, 앞 뒤를 정성 들여 날을 세운 뒤엔
항상 팔뚝의 털(그때 당시에는 아마도 솜털....^^)을 깍아 보아 털이 낫 위에 묻으면
그제서야 지게 진 사촌형님의 뒤를 따라 나섰다.
덕분에 칼 가는 재주도 빨리 익혔던 것 같다.
집안엔 항상 초벌갈기용 핸드 그라인더가 있었고, 두어 종류의 다른 숫돌이 따로 갖춰져 있었다.
무슨 칼 가는 집안도 아니었는데....-_-;
칼 가는 것 그 자체는 칼 가는 이에게 묘한 쾌감을 주는 것 같다.
굳은 쇠를 부드러운 돌에 갈아 넘기는 재미와
빠진 이까지 매워서 갈아 내고, 좌우로 넘어가는 날을 나란히 세운 후,
서릿발 위를 엄지로 훑어 보는 맛은 뒷머리를 선득선득 세우면서도 알 수 없는 쾌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인지 간혹 고향 집에 칼 갈 일이 있으면 동생과 나는 서로 하겠다고 다투곤 했었다.
그런 상황이니 귀한 부엌 칼을 남에게 맡길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워낙 남루한 행색의 노인이라 측은한 마음도 들고,
이 정도 연륜이면 어느 정도의 칼 가는 실력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한 수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부엌에서 아끼는 내 칼 한 자루와 아내의 칼 한 자루를 꺼내 맡겼다.
노인은 거의 칼 한 자루 값을 칼 가는 비용으로 불러 왔다.
조금 깍긴 했지만, 도와 준다는 기분하고, 도대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으면 그 가격을 부를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서 순순히 내어 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러 잠시 그 자리를 비웠다.
내가 맡긴 칼은 내가 무척이나 아끼는 칼이다. 벌써 5년째가 되어 가는 결혼 초,
살림 준비할 때, 특이하게 내 칼은 내가 따로 구해 왔었다.
지금 아내가 쓰는 칼은 그냥 부엌 막칼이지만,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터라 칼 또한 취향이 따로 있어서 꽤나 정성을 드려 얻은 칼을 갖고 있다.
첫번째 아끼는 칼은 평소에 가장 많이 쓰는 칼로 중국요리용 기본 칼인 사각칼이다.
두께가 보통 칼의 두 배이고, 크기 또한 상당해서 무겁기도 하거니와
소재가 상질이라 여간해서 날이 상하지 않는다. 만 4년 이상 동안 날 한번 갈지 않았다.
부드러운 재료는 칼을 얹기만 해도 제 무게로 재료를 썰어 댄다...-_-;
이제는 날의 이가 미세하게 어긋나기 시작해서 오늘 이 칼을 노인에게 맡겼다.
그 다음으로 아끼는 것은 왼손잡이용 일본요리용 기본도(일명 사시미)이다.
흔하지 않은 이 두 칼을 구하느라 남대문시장 통을 몇 주를 헤맸는지 모른다.
가격 또한 만만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 길이만 30 이 제법 넘는 사시미칼은 들고만 있어도 뭔가 베고 싶은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
물고기를 다듬을 때가 아니면 좀처럼 쓰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는 사바끼 칼이라고 부르는 흔치 않은 조그만 칼이다.
짐승을 도살하고 나서 뼈와 살을 분리하는 데 쓰는 전문 칼로
꽤 얇지만, 날 길이가 10cm 남짓한 짧지만 삼각형의 단단하고 뾰족한 칼이다.
학생 때, 해체공장에 몇 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서 그 칼 쓰는 법을 조금 배웠다....-_-;
이젠 많이 까먹고 써먹을 기회도 없어서 닭 정도 다듬는 데나 가끔 쓴다.
몸과 마음이 멀리 갔군...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서
칼 가는 노인 앞에 섰다. 건네주는 칼을 들여다 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친 그라인더로 초벌만 갈아 낸 것이다. 그것도 마구잡이로.....
반짝이며 내 얼굴이 비치던 칼 표면은 그라인더로 인해 긁힌 자국이 그득하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날은 아예 다 망가져 버렸다.
이게 뭐냐고 화를 내자, 노인은 칼 쓰는 데는 아무 상관없다며 괜찮다고 부득부득 우긴다.
10년이 훨씬 넘는 자신의 칼 가는 경력을 믿으라며....-_-;
데리고 있던 아이 때문에 적당히 해두고 끝냈지만,
아끼는 내 칼과 아내의 칼에는 상처만이 그득하다.....
집으로 돌아와 구석에 얹어둔 숫돌을 꺼내고 차근히 칼을 갈면서
누운 날은 세우고, 선 마음은 앉혔다.
오랜 만에 갈아보는 칼이다.
슥싹, 슥싹, 슥싹, 슥싹.....
노인의 행체나 경력만 믿고 실력을 가늠한 것이 처음부터 내 잘못이었나?
뭔가를 익히기 시작한 시간의 길이나 겉으로 보이는 자신감과
정작 그 속의 실력은 다른 것이었다.
단순히 오래 겪어 보았다는 것하고, 실제의 깊이는 전혀 다른 것이다.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현듯 삐져 나오는 생각....
나도 플라이 낚시를 시작한지 이제 제법 몇 년이 넘어 가고 있는데,
과연 나의 낚시는 시간의 그 길이만큼 깊이로 이어졌을까?
그 시간의 길이는 꼭 출조의 회수나 다양한 어종의 사이즈나 경험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단 한 번의 느낌과 깨달음으로도 해탈하는 이가 있으니
물리적인 횟수와 양보다는 낚시꾼의 느끼고 배우는 자세에 따라 좌우될 일이라 생각한다.
한 번의 출조와 한 번의 캐스팅에서도 알뜰히 느끼며, 배우며, 그래서 자랄 수 있다면
없는 생활을 쪼갠, 어깨 버거운 잦은 출조가 필요치도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헛된 빈 낚시 다닌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과 필요가 있었겠지만, 그리 길지 않은 사람의 일생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넉넉해 보이는 제법 낭비다.
지금으로부터도 한참이 지나서,
나도 누군가에게 아까 그 노인처럼 보이는 낚시꾼이 된다면
꽤나 서글픈 일이 아닐까?
쓱삭, 쓱삭, 쓱삭, 쓱삭.....
깨끗히 칼을 씻어 내고, 팔뚝을 걷었다.
스스슥, 후~ 욱
아직 내 칼 가는 한 칼은 녹슬지 않았군.....
내 마음으로 갈아내는 낚시라는 이름의 칼은 우찌 되고 있는지
버거워 보이는 연장통을 매고 남루한 옷차림에
조글조글한 얼굴을 한 백발의 노인 한 분이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누빈다.
"카알~ 갈아요!" "카알~ 갈아요!"
반가운 소리다. 어릴 때 살던 동네 좁은 골목마다 가끔씩 울리던 그 소리다.
목소리도 적당히 걸쭉하니 노인의 행색으로 보아도 제법 연륜이 엿보인다.
사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좀처럼 칼을 남에게 맡겨 가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들께서 모두 시골 분이셨고, 특히 아버님께서 칼 가는 솜씨가 대단하셨다.
덕분에 나도 꼬마 때부터 어깨 너머로 배운 덕에 칼 가는 일이라면 제법 자신이 있다.
내가 어릴 때, 일 년에 두 어 달은 시골에서 자란 덕에 낫질을 꽤 하였고,
아마 국민학교 고학년 때 쯤으로 기억하는데,
왼손잡이인 나를 위한 내 전용의 왼낫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낫 가는 일부터 제대로 배웠던 것 같다.
꼴 베러 나가기 전에는 항상 낫을 가는데, 앞 뒤를 정성 들여 날을 세운 뒤엔
항상 팔뚝의 털(그때 당시에는 아마도 솜털....^^)을 깍아 보아 털이 낫 위에 묻으면
그제서야 지게 진 사촌형님의 뒤를 따라 나섰다.
덕분에 칼 가는 재주도 빨리 익혔던 것 같다.
집안엔 항상 초벌갈기용 핸드 그라인더가 있었고, 두어 종류의 다른 숫돌이 따로 갖춰져 있었다.
무슨 칼 가는 집안도 아니었는데....-_-;
칼 가는 것 그 자체는 칼 가는 이에게 묘한 쾌감을 주는 것 같다.
굳은 쇠를 부드러운 돌에 갈아 넘기는 재미와
빠진 이까지 매워서 갈아 내고, 좌우로 넘어가는 날을 나란히 세운 후,
서릿발 위를 엄지로 훑어 보는 맛은 뒷머리를 선득선득 세우면서도 알 수 없는 쾌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인지 간혹 고향 집에 칼 갈 일이 있으면 동생과 나는 서로 하겠다고 다투곤 했었다.
그런 상황이니 귀한 부엌 칼을 남에게 맡길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워낙 남루한 행색의 노인이라 측은한 마음도 들고,
이 정도 연륜이면 어느 정도의 칼 가는 실력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한 수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부엌에서 아끼는 내 칼 한 자루와 아내의 칼 한 자루를 꺼내 맡겼다.
노인은 거의 칼 한 자루 값을 칼 가는 비용으로 불러 왔다.
조금 깍긴 했지만, 도와 준다는 기분하고, 도대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으면 그 가격을 부를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서 순순히 내어 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러 잠시 그 자리를 비웠다.
내가 맡긴 칼은 내가 무척이나 아끼는 칼이다. 벌써 5년째가 되어 가는 결혼 초,
살림 준비할 때, 특이하게 내 칼은 내가 따로 구해 왔었다.
지금 아내가 쓰는 칼은 그냥 부엌 막칼이지만,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터라 칼 또한 취향이 따로 있어서 꽤나 정성을 드려 얻은 칼을 갖고 있다.
첫번째 아끼는 칼은 평소에 가장 많이 쓰는 칼로 중국요리용 기본 칼인 사각칼이다.
두께가 보통 칼의 두 배이고, 크기 또한 상당해서 무겁기도 하거니와
소재가 상질이라 여간해서 날이 상하지 않는다. 만 4년 이상 동안 날 한번 갈지 않았다.
부드러운 재료는 칼을 얹기만 해도 제 무게로 재료를 썰어 댄다...-_-;
이제는 날의 이가 미세하게 어긋나기 시작해서 오늘 이 칼을 노인에게 맡겼다.
그 다음으로 아끼는 것은 왼손잡이용 일본요리용 기본도(일명 사시미)이다.
흔하지 않은 이 두 칼을 구하느라 남대문시장 통을 몇 주를 헤맸는지 모른다.
가격 또한 만만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 길이만 30 이 제법 넘는 사시미칼은 들고만 있어도 뭔가 베고 싶은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
물고기를 다듬을 때가 아니면 좀처럼 쓰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는 사바끼 칼이라고 부르는 흔치 않은 조그만 칼이다.
짐승을 도살하고 나서 뼈와 살을 분리하는 데 쓰는 전문 칼로
꽤 얇지만, 날 길이가 10cm 남짓한 짧지만 삼각형의 단단하고 뾰족한 칼이다.
학생 때, 해체공장에 몇 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서 그 칼 쓰는 법을 조금 배웠다....-_-;
이젠 많이 까먹고 써먹을 기회도 없어서 닭 정도 다듬는 데나 가끔 쓴다.
몸과 마음이 멀리 갔군...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서
칼 가는 노인 앞에 섰다. 건네주는 칼을 들여다 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친 그라인더로 초벌만 갈아 낸 것이다. 그것도 마구잡이로.....
반짝이며 내 얼굴이 비치던 칼 표면은 그라인더로 인해 긁힌 자국이 그득하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날은 아예 다 망가져 버렸다.
이게 뭐냐고 화를 내자, 노인은 칼 쓰는 데는 아무 상관없다며 괜찮다고 부득부득 우긴다.
10년이 훨씬 넘는 자신의 칼 가는 경력을 믿으라며....-_-;
데리고 있던 아이 때문에 적당히 해두고 끝냈지만,
아끼는 내 칼과 아내의 칼에는 상처만이 그득하다.....
집으로 돌아와 구석에 얹어둔 숫돌을 꺼내고 차근히 칼을 갈면서
누운 날은 세우고, 선 마음은 앉혔다.
오랜 만에 갈아보는 칼이다.
슥싹, 슥싹, 슥싹, 슥싹.....
노인의 행체나 경력만 믿고 실력을 가늠한 것이 처음부터 내 잘못이었나?
뭔가를 익히기 시작한 시간의 길이나 겉으로 보이는 자신감과
정작 그 속의 실력은 다른 것이었다.
단순히 오래 겪어 보았다는 것하고, 실제의 깊이는 전혀 다른 것이다.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현듯 삐져 나오는 생각....
나도 플라이 낚시를 시작한지 이제 제법 몇 년이 넘어 가고 있는데,
과연 나의 낚시는 시간의 그 길이만큼 깊이로 이어졌을까?
그 시간의 길이는 꼭 출조의 회수나 다양한 어종의 사이즈나 경험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단 한 번의 느낌과 깨달음으로도 해탈하는 이가 있으니
물리적인 횟수와 양보다는 낚시꾼의 느끼고 배우는 자세에 따라 좌우될 일이라 생각한다.
한 번의 출조와 한 번의 캐스팅에서도 알뜰히 느끼며, 배우며, 그래서 자랄 수 있다면
없는 생활을 쪼갠, 어깨 버거운 잦은 출조가 필요치도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헛된 빈 낚시 다닌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과 필요가 있었겠지만, 그리 길지 않은 사람의 일생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넉넉해 보이는 제법 낭비다.
지금으로부터도 한참이 지나서,
나도 누군가에게 아까 그 노인처럼 보이는 낚시꾼이 된다면
꽤나 서글픈 일이 아닐까?
쓱삭, 쓱삭, 쓱삭, 쓱삭.....
깨끗히 칼을 씻어 내고, 팔뚝을 걷었다.
스스슥, 후~ 욱
아직 내 칼 가는 한 칼은 녹슬지 않았군.....
내 마음으로 갈아내는 낚시라는 이름의 칼은 우찌 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