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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대산 오프로드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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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늬 작성일08-09-26 14:05 조회8,877회 댓글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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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에 있는 석항역. 일행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였습니다.


졸린 눈을 부릅뜨고 38번 국도를 따라 달리고 달려 도착한 그 곳은 조그만 역이었어요. 제가 제일 먼저 도착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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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구내 곳곳에 노랗고 빨간 원색의 꽃들이 쓸쓸함을 달래주고 있는 석항역의 입구를 플랫폼에서 바라봤습니다.


 


"석항"이라는 이름이 독특하다싶어 찾아봤더니 이 지역이 옛날엔 정선땅이었는데 "돌항소"라 불리는 천민집단구역이 있어 "석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일제시대 우리말 지명을 한자어로 바꾸던 시절에 그렇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물론 우리나라 지명의 유래는 일제시대에 한자어로 바뀐 경우도 많고 명확한 유래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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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영원히 만나지 않는 평행선으로 상징되기도 하지만 이렇듯 서로 교차하며 휘어져 나가는 모습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려 주기도 합니다. 이곳을 지나는 철도는 제천에서 분기된 태백선인데 태백 지역의 무연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화물열차가 이용되는 노선이라고 하니 산업철도라는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는 성실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어쩐지 피로가 쌓여 지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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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화물열차 외에 무궁화호가 하루에 몇 번 지나갑니다. 몇 시간에 한 번씩 제천을 오고 가는 열차의 시간표를 봤습니다.


작년 오지투어때 본 승부역과는 또다른 풍경의 석항역. 혼자 생각에 영동선과 태백선을 따라 기차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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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구내를 둘러보며 촬영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돌쇠님이 도착했습니다. 어디가나 역 앞엔 꼭 있는 역전다방에 들러 칡차를 마시며 도착한 용석님과 동욱이를 만나고 잠시 후 다시 하이루님을 만나 연하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비도 오는데다 시간도 애매해서 일찌감치 캠핑모드로 전환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밤 늦게까지 제법 많은 비가 내렸지만 우린 타프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모닥불에 둘러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언제나 만나면 반가운 오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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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는 터프가이지만 섬세하고 센스있는 용석님이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서 차의 수평을 맞추어 놓았습니다.


네 바퀴가 놓여있는 바닥의 높낮이를 살펴 낮은 곳은 적당한 높이로 돌을 받친 모습입니다.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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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사이 비가 그치고 날이 밝자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바위들 위에는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교시절 생물시간이 떠오릅니다. 이끼의 종류에는 솔이끼와 우산이끼가 있다고 배웠지요. 그럼 이녀석들은 모두 솔이끼인가요? 9월 중순에 접어든 강원도 산골엔 어느새 가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별 모양의 단풍잎이 푸른 이끼 위로 살포시 앉아 있는 모습에서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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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나서 망경대산을 누벼보자고 작정을 한 우리 일행은 연하계곡을 따라 온통 잡초로 덮여 자신의 모습을 숨긴 산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최소한 수 년간 차가 지나간 흔적이 없는 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길이다 싶어 어렵게 들어서면 번번히 오랫동안 방치된 밭이 나오고 길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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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대의 차가 때론 떼지어 때론 나누어 길을 찾아 숲속을 누볐습니다. 오르다 미끄러지고 나무에 긁혀가며 길을 찾는 일은 모든 일이 그렇듯이 아무도 하라고 하지 않지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기에 즐겁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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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시 산 아래 포장도로까지 나와 다른 진입로를 찾아 올라야 했습니다. 이번엔 매끈한 흙길이 나있는 임도를 찾았습니다. 우린 싸리재를 찾기 위해 수시로 모여서 현위치와 지도에 표기된 비포장길을 대조하며 새로이 방향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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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다시 출발. 네 대의 무쏘가 한마음 한뜻이 되니 거칠 것이 없습니다. 지나가다 옆에 길이 보이면 뒷차량이 다시 선도차량이 되어 들어서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방향을 바꿔가며 점심때가 지나도록 열심히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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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넓은 개활지가 나타나고 배추밭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것을 고냉지재배라고 하죠? 고도가 높아 기온이 낮고 시원해야 속이 알차고 육질이 무르지 않은 맛난 배추가 자란답니다. 이곳은 약 해발 800미터 지점이었는데 싱그럽게 자라나는 배추가 사방에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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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정말 속이 꽉 찼죠? 밥 때가 지나 뱃속도 출출한데 통통한 배추를 보니 돼지고기를 삶아 저 녀석의 속살로 보쌈을 싸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며 혼자 군침을 삼켰습니다. 된장을 듬뿍 찍어 먹어도 입안에 구수한 맛과 단맛이 가득할 것 같구요. 뿌리를 잘라 깍아 먹는 것도 별미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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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에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전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김치"라구요. 전 잘 익은 김치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김장독에 묻어둔 김치를 큼직하게 썰어 손으로 찢어 밥 한 술 뜬 숟가락에 걸쳐 먹는 그 맛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대한 기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상도 날려 버리고 이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아직 싸리재를 찾지 못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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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제가 선두에 서서 새로운 길을 찾다가 버려진 폐광에 도착했습니다. 국제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해서 요즈음 폐광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하던데 이곳은 적막함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굳게 닫힌 문, 멈춰버린 장비... 찾는 이 없는 광산에 난데없이 들이닥친 사륜모빌들이 생기를 불어 넣은 듯 파란 양철지붕과 안전제일 표지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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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저 자세로 서 있을까요? 제게 짜증났던 체벌의 기억은 몸을 기마자세로 하고, 팔을 앞으로 뻗치고 나서 동작그만하는 것이었어요. 왜 갑자기 잊고 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오르는지. 저 포크레인이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눌려 저 자세로 어쩌면 수 년간 동작그만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끊어진 철로에 멈춘 기차가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부르짖는 심정으로 저 포크레인도 서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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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폐광을 처음 봤습니다. 신기한 풍경에 이리저리 둘러보며 셔터를 눌러대다 다시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오프로드에 입문한 첫 날 대부도 황금산에서 황금빛 훈장을 받았는데 오늘은 검둥산에서 흑색 훈장을 받은 기분입니다. 혹시라도 내린 비에 지반이 약해지지 않았을까 조심하며 한 발 두 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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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 본 광산의 모습입니다. 오후의 강한 햇살이 검은 돌더미를 비춰 흑백톤의 강한 이미지를 만들어 줍니다. 아직 노란색이 생생한 중장비는 퇴색되기 싫은 녀석의 심정으로 비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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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쇠님도 떠나는 아쉬움에 차에서 내려 자신만의 느낌과 기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본 기억은 카메라에 담고, 떠오른 상념들은 블로그에 담고, 함께한 즐거운 시간은 카페에 담고... 문명의 이기가 우리에게 준 새로운 생활 방식이 전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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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에서 잠시 쉬며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지만 도대체 싸리재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이대로 돌아가기엔 2% 아니 20% 부족하다는 생각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의 공감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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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진입로는 31번 국도에서 들어가는 오직 한 코스. 굽이굽이 이어지는 그 도로를 따라 마지막 시기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싶은 운동선수마냥 우린 설레임과 기대를 안고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비포장 산길에서 마추친 영감님 내외가 알려준 희소식. 우리가 오르는 길을 따라가면 망경대산 위에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에 정말 신바람나게 달렸습니다. 이 길 좋다, 마음에 든다고 서로 CB를 날려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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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팍까지 잡초와 싸리나무가 가득 메운 길 아닌 길을 올라 드디어 정상 부근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뉘엇뉘엇 져가는 태양을 만났습니다. 아~ 조금 늦었구나. 조금 일찍 너를 만났으면 좋았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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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분만 더 일찍 이곳에 도착했어도 멋진 석양을 감상했을테지요. 그래도 뿌듯하기만 했습니다. 지난 수 년간 아무도 찾지 않았던 1천미터 고지에 오르는 길을 우리가 찾아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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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담고 싶은 한 사내가 차 지붕위에 올라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태양을 닮기 위해 태양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슴 가득 태양의 열정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자신을 불사르는 그 모습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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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는 온통 조림목인 잣나무로 가득하지만 높이 솟아있는 몇 그루의 나무도 있었습니다. 남들의 "언제나 똑같은 주말"을 보내고 싶지 않은 우리들처럼, 거친 바람에 이리저리 휘어지고 깡마른 모습이지만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저 나무들. 마지막 붉은 기운을 쏟아내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우리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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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양의 아름다움을 숨죽이며 바라보는 또 한 녀석. 제 무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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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닮으려는 사내가 자신만의 의식을 마치고 돌아섰습니다. 저를 카메라에 담아주고 있습니다. 굵고 짧은 사내의 실루엣도 멋진 석양에 비춰지면 볼만할 수 있구나 싶지 않습니까? 검푸는 하늘과 붉은 석양빛에 비친 검은 선과 면들이 하나의 담채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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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조금 일찍 올 걸" 하는 작은 욕심도 사라지고 망경대산 정상에 설 수 있었다는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길을 찾느라 헤멘 하루가 이렇게 넉넉한 밥상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다시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서 해 뜨는 모습과 해 지는 모습을 모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울까" 입맛을 다시며...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있기에 주말의 오프로드 캠핑은 제가 스스로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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