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네티즌이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
페이지 정보작성자 최희정 작성일07-06-26 16:20 조회2,329회 댓글0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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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감시당하고 있다"
"모든 네티즌이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
알고나 있는가? 당신이 지금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지도 않은가? 당신은 우리에 갇혀 주인이 던져주는 밥이나 넙죽넙죽 받아먹는 가축이나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은 미성숙한 존재이다. 당신은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능력도 없고 가치를 판단할 능력도 없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진 정치적 권리를 누구에게 위임할 것인지에 대해서 누군가와 의견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다.
그러므로 당신은 감시받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지금 의심의 눈초리로 당신의 글을 훑어보고 있다. 그리고 마음속의 잣대로 당신을 이리저리 저울질 하고 있다.
“호! 이 자식봐라. 이 자식 이거 잡아넣어야 안되겠나.”
“이 짜식은 확실히 문제가 있어. 두어달 콩밥을 멕여야 되겠군!”
“흠! 이 자식은 순한데. 시키면 시킨대로 말도 잘 듣는군. 그래야지.”
“아니 이거 뭐야. 이 녀석은 벌금 300만원을 때려야 되겠군!”
누군가가 이런 흉악한 마음으로 당신의 소중한 글을 앞에놓고 법으로 걸까말까 저울질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 의심 당하니까 행복한가? 감시 당하니까 기분이 좋으신가?
이러고도 살 맛이 나는가?
당신이 당신의 벗과 나누는 생각이 옳으냐 그르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발가벗겨진 신세라는 거다. 당신은 빅 브라더의 눈초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지금 발에 족쇄가 채워진 노예와 같은 신세이다.
누군가가 당신이 남긴 기록을 염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당신을 의심하고 감시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즉 당신을 주인이 아닌 노예나 가축으로 대접하고 있는 것이다.
노예가 달리 노예이겠는가? 부끄러움을 모르니까 노예이지. 가축이 달리 가축이겠는가? 주는 대로 쳐먹으니까 가축이지. 때리는데로 쳐맞으니까 노예이고 모욕당하고도 대들지 못하니까 가축이지.
당신은 허가받은 조중동과, 허가받은 정치인들과, 허가받은 방송사들이 떠먹여주는 밥을 삼켜야 한다. 당신이 스스로 정보를 구하고 의견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노예나 가축인 당신에게 좋지 않다.
당신은 지금 그런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다.
왜 깨닫지 못하는가? 당신이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감시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누구든 의심하거나 감시하려는 자는 당신의 글을 읽지 못하도록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나를 의심하거나 감시하려는 자에게 나의 글을 읽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의심을 거부하고 감시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나의 고유한 인권이다. 내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부터 내게 주어져 있는 권리다.
(경고한다. 나를 의심하고 감시하려는 자는 내 글을 읽지 마라. 나의 글을 읽는 그 자체로 나의 권리에 대한 침해다. 나를 의심하고 감시하려는 자가 이미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미 내게 죄를 지었다. 마땅히 징벌되어야 한다.)
알고 있는가? 당신은 길거리에서 경찰의 불심검문과 임의동행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헌법 37조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불법수색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당신은 영장없이 체포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당신은 변호사 없이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당신은 누군가가 의심의 눈초리로 당신을 훑어보는 행동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왜인가? 당신은 노예가 아니라 떳떳한 자유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누군가가 당신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왜 깨닫지 못하는가? 감시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의심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누가 노예인가? 누군가가 당신을 노예취급할 때 저항하지 않는자가 노예다. 누가 가축인가? 스스로 구하지 아니하고 떠먹여주는 대로 쳐먹는 자가 가축이다.
선관위에 자신을 감시하도록 허용한 자가 있다면 나는 그들을 노예라 부르겠다. 이 더러운 노예들아. 이 더러운 가축들아. 계속 그러고 살아라!
이 땅에서는 선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누군가와 의견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당신은 의심과 감시의 대상이다.
자유가 죽고 민주가 죽었다. 자유대한에 자유가 없고 민주한국에 민주가 없다.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더냐. 주인이 왜 감시를 당하고 의심을 당하느냐?
우리의 선열들이 아스팔트 위에 흘린 무수한 피가 도대체 무엇때문에 흘린 피인지를 그대는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지금이 자유민과 노예가 가려지는 순간이다. 부끄러움을 당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를 어찌 인간이라 하겠는가? 억압당하면서도 반항 한 번 못한다면 개나 돼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묻노니 너희는 인간인가?
나는 저항해야 할 때 저항하지 못하는 너희를 경멸한다. 나는 너희의 더러운 얼굴에 침을 뱉는다. 잘 먹고 잘 살어라. 천년 만년 노예로 살아라. 두들겨맞고 모욕당하고 억압당하고 감시당하고 그렇게 살아라. 너희는 노예이니까.
일어서는 자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 왜적이 쳐들어올때 총을 드는 자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 독재가 유린할 때 아스팔트 위에 서는 자가 주인이다. 오늘 당신이 일어선다면 당신이 이 나라의 주인이다.
지금 이 나라에 지식인은 모두 죽었다.
참여연대가 성명을 발표하는 데도 더러운 오마이뉴스와 한겨레는 침묵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네티즌의 마음과 멀어졌다. 조중동과 한 통속이 된 것이다.
너희들도 알 것이다. 조선일보도 이상재 선생과 안재홍 주필이 있을 때는 진보적이었고 동아일보도 백지광고로 탄압당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너희는 조중동보다 변질하는 속도가 빠를 뿐이다.
서프라이즈의 김동렬님의 글입니다.
"모든 네티즌이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
알고나 있는가? 당신이 지금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지도 않은가? 당신은 우리에 갇혀 주인이 던져주는 밥이나 넙죽넙죽 받아먹는 가축이나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은 미성숙한 존재이다. 당신은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능력도 없고 가치를 판단할 능력도 없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진 정치적 권리를 누구에게 위임할 것인지에 대해서 누군가와 의견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다.
그러므로 당신은 감시받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지금 의심의 눈초리로 당신의 글을 훑어보고 있다. 그리고 마음속의 잣대로 당신을 이리저리 저울질 하고 있다.
“호! 이 자식봐라. 이 자식 이거 잡아넣어야 안되겠나.”
“이 짜식은 확실히 문제가 있어. 두어달 콩밥을 멕여야 되겠군!”
“흠! 이 자식은 순한데. 시키면 시킨대로 말도 잘 듣는군. 그래야지.”
“아니 이거 뭐야. 이 녀석은 벌금 300만원을 때려야 되겠군!”
누군가가 이런 흉악한 마음으로 당신의 소중한 글을 앞에놓고 법으로 걸까말까 저울질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 의심 당하니까 행복한가? 감시 당하니까 기분이 좋으신가?
이러고도 살 맛이 나는가?
당신이 당신의 벗과 나누는 생각이 옳으냐 그르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발가벗겨진 신세라는 거다. 당신은 빅 브라더의 눈초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지금 발에 족쇄가 채워진 노예와 같은 신세이다.
누군가가 당신이 남긴 기록을 염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당신을 의심하고 감시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즉 당신을 주인이 아닌 노예나 가축으로 대접하고 있는 것이다.
노예가 달리 노예이겠는가? 부끄러움을 모르니까 노예이지. 가축이 달리 가축이겠는가? 주는 대로 쳐먹으니까 가축이지. 때리는데로 쳐맞으니까 노예이고 모욕당하고도 대들지 못하니까 가축이지.
당신은 허가받은 조중동과, 허가받은 정치인들과, 허가받은 방송사들이 떠먹여주는 밥을 삼켜야 한다. 당신이 스스로 정보를 구하고 의견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노예나 가축인 당신에게 좋지 않다.
당신은 지금 그런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다.
왜 깨닫지 못하는가? 당신이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감시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누구든 의심하거나 감시하려는 자는 당신의 글을 읽지 못하도록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나를 의심하거나 감시하려는 자에게 나의 글을 읽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의심을 거부하고 감시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나의 고유한 인권이다. 내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부터 내게 주어져 있는 권리다.
(경고한다. 나를 의심하고 감시하려는 자는 내 글을 읽지 마라. 나의 글을 읽는 그 자체로 나의 권리에 대한 침해다. 나를 의심하고 감시하려는 자가 이미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미 내게 죄를 지었다. 마땅히 징벌되어야 한다.)
알고 있는가? 당신은 길거리에서 경찰의 불심검문과 임의동행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헌법 37조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불법수색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당신은 영장없이 체포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당신은 변호사 없이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당신은 누군가가 의심의 눈초리로 당신을 훑어보는 행동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왜인가? 당신은 노예가 아니라 떳떳한 자유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누군가가 당신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왜 깨닫지 못하는가? 감시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의심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누가 노예인가? 누군가가 당신을 노예취급할 때 저항하지 않는자가 노예다. 누가 가축인가? 스스로 구하지 아니하고 떠먹여주는 대로 쳐먹는 자가 가축이다.
선관위에 자신을 감시하도록 허용한 자가 있다면 나는 그들을 노예라 부르겠다. 이 더러운 노예들아. 이 더러운 가축들아. 계속 그러고 살아라!
이 땅에서는 선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누군가와 의견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당신은 의심과 감시의 대상이다.
자유가 죽고 민주가 죽었다. 자유대한에 자유가 없고 민주한국에 민주가 없다.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더냐. 주인이 왜 감시를 당하고 의심을 당하느냐?
우리의 선열들이 아스팔트 위에 흘린 무수한 피가 도대체 무엇때문에 흘린 피인지를 그대는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지금이 자유민과 노예가 가려지는 순간이다. 부끄러움을 당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를 어찌 인간이라 하겠는가? 억압당하면서도 반항 한 번 못한다면 개나 돼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묻노니 너희는 인간인가?
나는 저항해야 할 때 저항하지 못하는 너희를 경멸한다. 나는 너희의 더러운 얼굴에 침을 뱉는다. 잘 먹고 잘 살어라. 천년 만년 노예로 살아라. 두들겨맞고 모욕당하고 억압당하고 감시당하고 그렇게 살아라. 너희는 노예이니까.
일어서는 자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 왜적이 쳐들어올때 총을 드는 자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 독재가 유린할 때 아스팔트 위에 서는 자가 주인이다. 오늘 당신이 일어선다면 당신이 이 나라의 주인이다.
지금 이 나라에 지식인은 모두 죽었다.
참여연대가 성명을 발표하는 데도 더러운 오마이뉴스와 한겨레는 침묵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네티즌의 마음과 멀어졌다. 조중동과 한 통속이 된 것이다.
너희들도 알 것이다. 조선일보도 이상재 선생과 안재홍 주필이 있을 때는 진보적이었고 동아일보도 백지광고로 탄압당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너희는 조중동보다 변질하는 속도가 빠를 뿐이다.
서프라이즈의 김동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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