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와 자연
페이지 정보작성자 바다 작성일01-06-13 07:39 조회342,336회 댓글0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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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 영하
"길이면 된다. 그러나 꼭 길이 아니어도 좋다."
전형적인 Off Roader들이 말하는 아주 도전적인 슬로우건이다.
Off Road에는 사진과는 또다른 열정의 세계, 매니아의 세계가 있다.
비록 Off Road의 세계를 접하게 된 동기가 개인적으로는 도구적 관점 내지 자연사진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필요에 의한 것이지만 그 자체로도 남다른 매력과 열정을 뿜어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또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것이다.
인간이 대자연을 호흡하고 느끼기 위해 자연에 다가서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가지, 등산과 Off Road이다. 여기서 자연이라 함은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지형인 우리나라의 특성을 감안하여 일단 산악지형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반드시 산악 뿐만이 아니라 포장길이 없는 곳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의미에서 등산과 Off Road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고 봐야한다.
일단 등산은 힘겹고 고된 산행의 과정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연을 폐부 깊숙히 들이마시고 그동안 쌓인 도심의 체증을 뱉어내어 자신을 자연에 순화시키고 동화시키는 데서 기쁨을 맛보는 것이라면 Off Road는 자연의 험난함과 난관을 문명의 이기를 빌어 극복하고 뛰어넘음으로써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등산 또 Trekking이 경외심을 가지고 순응의 대상으로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상생을 추구한다면 Off Roading은 인간의 우월성을 가지고 극복의 대상으로서 자연을 바라보고 그를 통한 성취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성격을 판이하게 달리 한다.
그래서 Trekking 또는 등산은 여유가 있고 평화로우며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적지만 Off Roading은 긴장이 살아있으며 거칠고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다.
가파른 오르막을 걷다가 미끄러지면 무릎이 까지고 말겠지만 사륜으로 비탈진 경사를 오르다가 잘못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자칫 커다란 재산과 인명상의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Off Road는 결정적으로 우리의 주어진 문명과 가치관의 범위 내에서는 분명 가꾸고 보존해야 할 자연에 반하는 성질이 지니고 있다.
가뜩이나 대기오염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은데 모처럼 맑고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곳에 뽀얀 먼지를 휘날리며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차들을 보면 속이 상하는게 인지상정인데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륜구동들이 일반 휘발유보다 매연배출량이 100배 정도 높은 경유를 주연료로 사용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그러한 불일치와 모순된 상관관계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굉음을 울리며 경사를 뛰어넘으려는 사륜에서 느껴지는 힘과 열정은 그러한 모순과 부조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마치 결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한쌍이 어울리는 모습, 부조화의 조화와 어울림이다.
Off Road의 그런 매력이 어디서 나올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내린 결론은 그것이 바로 인간과 자연의 역사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본성이라는 것이다.
최초의 인간이 불과 도구를 사용하면서 무리를 지어 자연의 공포를 극복하고 자신에게 맞게 개조하면서 이루어 온 문명과 그럼에도 태생적으로 그 자연의 일부임을 부인할 수 없는 한계가 인간에게는 공존하고 있는 것이고 그러한 생존을 위한 극복과 태생적 동질성이 각각 Off Roading과 등산 또는 Trekking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게다가 Off Roading에는 이미 도시화되어 부품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소시민 또는 현대인에게 잊혀져 버린 야성의 의미를 느끼게 해준다.
커다란 바위 또는 깊은 진창 속에 빠져서 헤어나오기 위해 굉음을 토하며 버둥거리는 사륜을 보면 마치 함정에 빠진 맹수가 그로부터 헤어나기 위해 포효하며 발버둥치는 모습 그대로다.
여기에는 힘이 있으며 간절함이 있고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자동차의 모습이 아닌 맹수의 모습인 것이다.
또 대개의 Off Road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로 무리를 지어 Off Roading을 하게 되는데 무지막지한 바퀴와 투박한 범퍼, 그리고 시커먼 써치라이트 등으로 중무장한 사륜구동차량들이 수십여 대 무리를 지어 달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래서 혼자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길을 떼를 지어서는 거뜬히 올라설 수 있고 또 그렇다.
이는 개체로서의 무력함을 집단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집단의식의 발현이며 그 속에 존재하는 동료애와 좀 발전해서 생사를 같이한다는 숙명성이 있다.
이것은 짧게는 군대시절의 향수를 불러오고 멀리는 선사시대에 무리를 지어 사냥에 나서던 인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인간은 외로운가? 이런 집단 속에서는 영원히 외롭고 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도 잠시나마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집단의 힘이 마치 자신의 힘인양 착각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Off Roader가 아니다. 아니, 정통 Off Roader가 아니다.
그동안 자연이 좋아 자연사진을 찍는다고 산과 들로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기존에 타던 승용차가 상당히 빨리 망가졌고 무엇보다 한계가 많았기 때문에 일전에 사륜구동으로 차를 바꾸긴 했지만 그것은 Off Road Adventure를 위해서가 아니라 Off Road Driving을 위해서였다.
모험적 수준의 Off Roading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에 맞게 자신의 차량을 개조(이른바 튜닝)하고 그에 도전하면서 스스로를 정통 Off Roader라 부르지만 나는 그저 Driving을 즐기는 수준에서 만족할 뿐이다.
또 한편으로는 실제 Off는 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개조에서 자기만족을 얻는 사람들도 있음을 보면 마치 사진보다는 카메라 자체에 집착하는 경향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으며 그렇게 무언가 자기것에 대한 소유의식과 남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졌다는 차별의식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내 목적은 극복을 통한 성취감보다는 그 자체를 즐기는데 있고 그 자연을 즐기는데 있다. 사진을 찍는데서 즐거움을 느끼고 또 자연을 느끼고 호흡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민감한 비포장을 정교하게 운전해가는데서 즐거움을 느끼고 또 그를 통해 좀더 많이 좀더 빨리 자연을 보고 느낄 수 있으면 그로서 족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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