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천 그리고 다시 찾은 비수구미 ##
페이지 정보작성자 들뫼 작성일09-02-03 00:19 조회17,486회 댓글16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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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화천 그리고 비수구미(秘水九美)
나에겐
20년 지기인 대학 동기 한명이 있다.
춘추전국시대 절친한 관계인
백아와 종자기를
일컬던
"知音"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친구이다.
제 아무리 거문고에 달인인들
그 거문고의 음악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 친구는
나에게 종자기와 같은 친구이다.
이 친구가
여러가지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그 친구와 1박2일의
짧고도 긴 여행을
시작한다.
서울에서 출발해 경춘가도를 신나게 달려
도착한 곳은
파라호
인근에 있는 선착장인데
명칭이 가물가물...
시원한 파라호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어설픈 함석기와와
파라호에 떠 있는 배들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아울러
세상근심이
풍광 하나에 녹는 듯 하다.
근심이 모두 강물에
떠 내려 갔으면 좋겠다.
코발트 내부에 주방이 다소 좁다.
그래서 멀티펑션을
걸쳐 봤더니 안성 맞춤이다.
조리 공간이 좁아
불만이었는데
앞으로 이렇게 사용해야 겠다.
기존 테이블도 제거(?)했다.
기존 테이블을 설치하면
사람들이 오가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래서 과감하게 폴딩쉘프로 대체...
이곳은 화천에 있는
딴산야영장이다.
생각보다 환경이 좋다.
특히나
오지여서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이곳은 빙벽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앞에 보이는 빙붕같은 저 빙벽이
인공으로 물을 뿌려 만든 작품이다.
그 앞에 사람들이 깨알같이 보인다.
빙벽에 붙어 있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딴산야영장에서
화천시내까지
약 5분 정도 소요된다.
tv에서 이외수씨가
화천 산천어 축제를
홍보하던 모습을 본적이 있다.
그래서 겸사 겸사
산천어 잡으로 왔다. ㅋㅋ
낚시는 초자라 잡힐지 모르겠다.
시각이 오후 3시정도
그물안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마치
그물속에 같힌 물고기 같다.
표를 끊고 걸어가다 보면
사람들이 화롯대에 옹기종기 모여
무엇을 먹고 있다.
바로
산천어구이를
먹고 있었다.
순간
산천어를 많이 잡아야겠다는
욕심이
마음 한 구석에서 솟구친다.
산천어를 잡으러 왔지만
잡히질 않는지
무료한 표정으로
낚시대를 떨구고 있는 아이도 보인다.
우리도 2대를 샀다.
개당 7,000원 ㅜㅜ
많이 잡아야 할텐데..
낚시에 낚자도 모르는
우리에게 과연 잡힐런지..
1시간만에
한 마리를 잡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소 뒷걸음질 치다
밟혔다.ㅋㅋ
사이좋게 친구넘과
한 마리씩 잡았다.
2시간이 넘어가면서
집중력도 약해지고
슬슬 지겨워진다.
그냥 사 먹을까....
그래도 돈내고 왔는데..
자세도 요지경이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옆에서는 염장성
환호가 터지고..
우린 뭐야
이런 된장..
산천어 잡다 지친 아이는
아빠의 품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나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잠이 아닌가 싶다.
3시간이 지나
드디어
또 한 마리를 잡았다.
기존에 잡은 놈보다
2배는 크다.
잡히는 순간
환호를 질렀다.
로또 당첨보다
기뻤다는...ㅎㅎ
보다시피 배에 걸린
넋빠진 산천어
어둠이 내려온다.
인산인해를 이루던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고
몇명이 없다.
산천어 잡기 옆에는 이렇게
빙등으로 오로라를 연상케하는
조형물도 있다.
산천어 3마리를 잡고
숙소로 돌와왔다.
그래도 첫 출조 치고는 성공한 듯 하다.
약간의 빙벽은 더 신비스럽다.
산천어 잡는 다고 온 힘을 들였더니
출출하다 못해
완전히 헝그리다.
잡은 산천어 칼집내고
구이를 하기로 한다.
몇마리 잡지 못해
회로 뜨지는 못했다.
한우도 좀 사고 소주와 맥주
이 시간이
영원하길
바라며
친구와
캄캄한 이 밤에
술잔을 기울이며
희노애락을 논해 본다.
아침이 되니
옆에 한 집이 더 늘었다.
새벽에 도착해
집을 짓고
늦잠을 청하는가 싶더니
아침 인사를 건넨다.
새벽에
달그락 소리에
잠 깨셨죠? 라며
인사를 건넨다
매너가 좋으신 분이다.
2일차
오늘은
비수구미 트레킹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평화의 댐쪽으로 이동
비수구미를
5년인가
4년인가
전쯤에 오프하러 왔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옛 고향을 찾는 기분으로 가슴이 설렌다.
오지답게
눈이 녹지 않고 있다.
비수구미 들머리다.
예전에는 철문이 이곳에 없었다.
여기서 약 200여m정도 뒤에 있었는데
이쪽으로 옮겨졌다.
그때는
차량이 들어갈 수 없어서
철문 옆으로 헬기 레펠을 해서
내려갔다.
정말 죽음이었는데..
좀 실망스러웠다.
내가 처음인줄 알았는데..
많은 타이어 자국이 있다.
그새 여기 누군가 정복하고
간 모양이다.
눈이 많이 밟혀져서
미끄럽다.
아이젠을 착용했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순탄하다.
예전에 길이 이렇지 않았는데..
누군가 작업을 한 듯 하다.
예전 길은..
2004년도에 오프를 간적이 있었다.
길이 이렇게 되어있었는데...
기억해 보면 이때가 정말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들이대던 시절
모빌이 총5대가서
모빌하나 밋션나가고
모빌하나는 tc작동 않되고
고작 6km를 약 6시간의 사투끝에
관통한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곳이기도 하다.
가다보니 야생 동물 발자국이 보인다.
트레킹 길은 매우 단조롭다.
계속 이어지는 임도길 트레킹
오가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20년 지기가 있어서 그런지
든든하고
편안하다.
가을에 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콸콸 흘러야 할 계곡의 물도 멈추어버린
오지 비수구미
그리운
M/T 타이어의 자국
굽이 굽이 저 모퉁이를 돌면 과연 어디가 나올까?
...
여기저기 산 짐승의
발작국이 보인다.
먹이가 없었는지
이곳까지 내려와
헤매다 간 모양이다.
순간 갤로퍼 한대가 체인을 치고 쏜살같이 올라간다.
무슨 모빌일까?
아침가리와 비슷해 모이는 지형도 있고..
이곳에 모든 시름 잊고
되돌아 가고 싶다.
예전에 없던 집들이 보인다.
새로 지은듯한 부티가 나는 두채의 집이 있다.
어떻게 오지인 이곳에 집을 지었을까?
휴식년제를 한다는 경고 문구가 보인다.
이젠 마을에 다 온 모양이다.
그래봐야 달랑 3가구..
다리건너
파랑 기와집에서
민박을 했었는데..
기억이 새롭다.
인근의 파라호는 얼음이 얼어서 배가 운행하지 못한단다.
예전에는 평화의 댐 공사관계로 물이 없었다.
그래서 육로로 모빌을 끌로 왔었다.
지금은 할 수 없지만..
육지속의 섬
비수구미
이곳이 아마도 이장님댁인것 같다.
음식도 판다.
다리건너 집은 장을 판다.
사서 먹은적이 있는데 그런대로 맛은 괜찮다.
배를 타고 평화의 댐으로 갈려고 했으나
얼어서
배를 운행할 수 없단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 가야한다.
6KM를 계속 내려왔는데
6KM를 계속 올라가야 한다.
우린 이제 죽었다.ㅜㅜ
인근의 계곡에서 물을 떠서
점심을 준비한다.
라면2개와 아침에 남은 밥 조촐한 식사지만 친구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최고의 만찬이 아닐까요?
知音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친구이다.
올라가는 길에
장 집 아저씨를 만났다.
몇시간만에 처음 보는 사람(?)이다.
인사도 나누고 잠깐 얘기하다
우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오르막 길에 접어들자
몸이
사우나를 시작한다.
오르막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6km가 이렇게 멀단 말인가?
힘들어도
괴로워도
올곧게
살아가자
친구야!!
봄이면
얼었던 계곡도
다시 흐르겠지요?
꿀맛같은 휴식을 느껴본다.
순간
행복은 상대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 잠깐의
휴식에서
행복을
느끼다니...
이 굽이 넘으면 곧 정상이다.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끝이 보이질 않는다.
내가 과연 어떻게 살어가고 있는가?
라는
명제를 던져본다.
모든이에게 햇살 같은
존재로
남고 싶다.
1박 2일의 짧고도 긴 여정이었습니다.
사랑을 받기 보다는
줄 때가 더
행복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
ㅋㅋ
@ 비수구미는 이런 곳이다 @
비수구미(秘水九美) 마을 파로호의 최상류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도 몇 안 남은 오지(奧地)중의 오지마을이다. 6.25전쟁 이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화전을 일구며 살기 시작해 한때 100가구가 넘는 대규모 취락을 이루기도 했지만 70년대 화전민 정리로 모두 떠나고 현재는 장씨, 김씨, 심씨 단 세 가구 7명뿐이며 모두 민박을 치고 밭농사 조금하면서 소일하는 것이 전부인 산간오지, 아니 수간오지(水間奧地) 마을이다. 일제시대에 화천댐이 건설되면서 최상류에 있는 비수구미 마을은 강물에 갇혀버렸으며 마땅한 육로가 없어서 드나들기가 여간 어려운것이 아니었으나 평화의 댐이 생기고 나름대로 잘 닦여진 도로가 이어지는 바람에 물밖으로 배를 타고 나가면 수하리 선착장에서 도로가 이어지니 화천으로 춘천으로 나들이가 한결 수월해졌다. 90년대에 트래킹 바람이 불면서 전국을 누비던 트래커들에 의해 숨은 진주, 청정 계곡으로 소개되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도보 트래킹보다는 4륜구동 차량들의 무분별한 오프로드 등으로 급격한 환경 파괴와 오염실태는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현재는 2009년 5월까지 자연휴식년제 기간으로 통행이 제한되는 곳이다. 비수구미(秘水九美)는 "신비한 물이 만든 아홉가지 아름다움’ 이라는 뜻이란다. 그것이 딱히 숫자적으로 9가지 아름다움을 말하는건지 그만큼 많이 아름답다는 뜻인지 모르지만 파로호까지 이어지는 물줄기는 인적하나 없어 고요하고 잔잔하며 파란 하늘과 푸른 산그림자가 겹쳐 그림처럼 아름답고 인상깊은 곳이다. 불편하다 싶을 정도로 속세와 떨어진 곳이다. 바로 윗쪽에는 21세기 인공조형물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평화의 댐이 가로막혀 비수구미 마을이 더욱 왜소하고 초라해보이지만 6. 25전쟁 이전에는 이곳이 북한땅이었으며 지금도 최전방 지역이라는 분단국가의 환경때문에 차량이나 사람들 통행도 별로 없이 그저 고즈넉하고 외로운 곳이다. 화천읍내를 지나 화천댐이나 파로호로 넘어가는 구만교, 꺼먹다리, 화천수력발전소를 오른쪽으로 두고 계속 북진하여 딴산을 지나고 풍산리에서 평화의 댐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여기에서부터는 지나는 차량이나 사람 흔적을 찾기 힘들만큼 외진곳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너무도 조용해서 길을 잘못든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이때쯤 나타나는 해산터널. 1986년도에 지어진 1968m의 해산터널은 한때는 국내 崔高, 崔長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낡고 초라한 터널이다. 터널 윗쪽의 해산은 호랑이 출몰로 유명하며 북으로 재안산을 지나 저 유명한 백암산으로 이어진다. 해산터널을 지나면 해산령 쉼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버스를 하차하여 트래킹을 시작한다. 비수구미 마을까지는 약 6Km 남짓 계속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임도(林道) 좌, 우측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차고 신선하다. 쉬엄쉬엄 경치 구경하며 계곡물에 발 담그면서 천천히 내려가면 2시간 내외가 걸리는 편안한 길이다.